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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일본의 핵심부품소재 수출 과잉규제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통권104호
 
2019-07-04 15:21:01
첨부 : 190704_brief.pdf  
Hansun Brief 통권104호  


김도형 한반도선진화재단 기획홍보위원장


설마하던 일이 벌어졌다. 일본정부 경제산업성은 74일부터 한국 반도체, 스마트 폰, TV 생산에 필수적인 3개 핵심부품소재의 수출절차 강화라는 비관세장벽과 동시에 안전보장상 우호국에 한해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하는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백색국가대상 27개국에서 한국만을 제외하기로 했다.

 

1. 동아시아 공정분업권을 훼손하는 일본의 도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50년 양국관계는 외환위기 직후 2~3년을 제외하면 순탄했던 순간이 없었다. 빈번한 과거사 문제, 독도 관련 망언과 반성 사과 요구에 영일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 정치 사회적 갈등이 산업계로 직접 번진 사례는 흔치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상호 절차탁마의 관계를 중시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이번 경제제재가 강제징용판결에 대한 대항조치가 아니라고 애써 부인했지만 소관부서인 경제산업성은 양국관계의 심각한 훼손이 이번 조치의 배경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과거사, 영토문제 갈등이 드디어 현실 경제와 미래로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조치에 따라 앞으로 일본기업은 한국기업에 수출하려면 허가신청과 심사에 90일이 소요되게 된다. 대한수출 계약건마다 정부 심사와 허가를 받도록 하여 반도체와 TV 등 전자부품과 기기를 주력산업으로 하는 대한수출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수출절차 강화 대상은 스마트 폰과 TV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일부에 사용되는 불소처리에 의해 열 안정성을 강화한 PI필름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빛을 인식하는 감광재인 리지스트, 반도체 회로에 빛을 쏘지 않은 부분을 깎아낼 때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3개 품목이다. 모두 일본기업이 세계생산량의 70~90%를 차지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일본이 자랑하는 전공정 독점 중견기업으로서 전 세계 후공정 조립대기업의 경쟁력을 쥐었다 폈다 한다. 전자가 갑이고 후자가 을이다.

 

국내기업 80%가 이들 일본기업에 의존하면서도 그동안 일본 국내기업 이상의 효율적인 기업 간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적정재고 관리에만 신경을 써 왔다. 우리는 대일통상마찰과 효율성 차원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수입규제에 가까운 수입선다변화와 국산화정책을 통해 중급 부품소재는 수입대체가 가능했지만 이들 품목은 끝내 수입을 대체하지 못했다.

 

2000년대 들면서 글로벌라이제이션과 IT 혁명을 계기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망과 생산공정의 분절화가 진행되면서 동북아 부품소재 분업은 고도화 되었다. 즉 한국은 일본의 고급부품소재를 수입하여 조립 가공한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은 최종제품으로 만들어 이를 구미선진국은 물론 한일에도 공급함으로써 고기술-고부가가치-고임금을 실현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동아시아는 EU 제품간 분업권의 효율성을 능가하는 고도의 공정간 분업권을 구축했고 동시에 일본의 3개 부품소재의 고급화도 가능했다.

 

당연히 이들 핵심부품소재가 우리의 대일역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일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수입선 전환이나 수입대체는 오히려 개별기업의 생산 효율성과 비즈니스 모델구축에는 장애로 작용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수출 주력제품인 반도체, 스마트 폰, TV 업체가 필요로 하는 핵심부품과 소재를 일본정부의 수출관리 아래 두고 신고 절차를 까다롭게 하면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대체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생산 수출 납기 지연, 대외신용도와 수출품고급화 전략에 일대 차질을 빚게 될 것은 자명하다. 당연히 우리 대기업 중간재의 대일수출도 축소될 것이므로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기업의 생산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의 대일수출입 축소와 일본의 대한수출 감소로 양국간 무역은 축소균형으로 갈 공산이 커졌다. 국교정상화 이후 50년간 양국이 줄곧 지향해 온 무역의 확대균형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2012년 이후 축소일로에 접어든 양국간 무역투자 활동에 대못을 박고자 작심한 셈으로 이는 동아시아 공정분업권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2. 겉 다르고 속 다른 수출규제로 양국기업의 피해 불러 올 일본 정부의 과잉개입

일본은 왜 이러한 정책선택을 한 것일까.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기업의 한국내 자산동결, 매각, 현금화 조치에 대한 대응조치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후 강화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자국우선주의와 보호주의에 대한 편승이다. 셋째, 최근 하웨이 사태에서 보듯 미국의 대중 전략기술정보 규제를 위한 미일의 국제공조체제 구축의 효과적 수단으로서 우리 대표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분명히 일본의 이번 조치는 다자 양자 협상과 최근 G20 공동성명에서 제창해 온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위한 규범 추동자로서의 기존방침에는 역행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일본 측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 정권은 지난 정권에서 가까스로 합의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화해와 치유 재단사업을 피해자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가볍게 중단시켰다. 여기서부터 양국간 신뢰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위안부문제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지만 이윽고 대법원은 전원합의부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 징용피해자 개인피해보상 판결을 통해 65년 한일기본조약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었다. 국내법을 우선하기 때문이었다. 1965년 기본조약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에서 지난 정권이 특별법으로 2회에 걸쳐 행한 보상도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 역시 기본조약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므로 정부와 기업의 배상의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징용공 피해보상 판결은 줄을 이었고 해결방안은 찾지 못한 채 양국관계는 마주달리는 열차와 같이 언제 파열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치 표류를 거듭해 왔다. 양국정부는 각자의 국내 상황 때문에 선제적 행동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의 입장에서 대법원판결이라는 사법부 결정에 대한 관여 문제와 피해자들의 반발을, 일본정부는 기본조약으로 완결된 사안으로 배상불가는 물론 배상범위, 대상자의 신원파악에 대한 확정불가와 한국이외 국가로의 확대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공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양국 전문가들도 세 가지 안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했다. 징용공 관련 이른바 가해 일본기업과 한일협정 당시 일본의 경제협력자금으로 설립된 한국기업과 양국 정부가 참여하는 기금설립, 한일협정에 명시된 제3국 중재위 회부, 국제사법재판소(IJC) 위임 등이 그것이었다. 한국은 기금의 경우 한국정부와 기업 참여가 대법원 판결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일본기업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행동에 옮기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중재위와 국제사법재판소 위임 결정 역시 외교적 협상과 대화의 실패를 대내외적으로 공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3자 결정을 정부는 물론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최종 수용여부가 크게 의문시 되었다. 더욱이 양국간 쟁점이 발생할 때마다 제3자 위임이라는 선례를 만들 우려가 제기되었다.

 

2018년 말 경만해도 일본의 유력한 지한파 인사는 일본기업의 피해보상 참여 가능성을 귀띔했었다. 대화와 해결의 문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아예 이를 무시했다. 대일관계 개선은 이 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일본 측은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등 대항조치를 거듭 시사하면서 520일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거한 중재위 방안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끝내 거부당했고 혐한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친한 파도 등을 돌렸다.

 

이번 일본의 대항조치는 조급함에서 나온 졸속한 땜질 처방이다. 일본답지 못하다.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한국정부는 619일 뒤늦게나마 양국기업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염출하여 원고 측과 화해하는 안을 제시했다. 대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일기본조약이라는 국제법의 틀을 지키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중재위 개최를 주장하며 거부했다. 이미 721일 참의원 선거 필승을 위한 보수파 결집 등 국내정치적 셈법을 굳힌 뒤였다. 둘째, 한국내 자산매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강제징용 기업이 3개 품목 생산 수출업체와 어떤 기업 간 관계(지분보유, 인력파견 등)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미스비시 중공업, 신일본스미토모, 후지코시가 3개 핵심부품소재 생산 수출기업과 어떤 기업간 관계에 있는가? 100년 역사의 세계적 정밀화학 기업 신에츠(新越)가 강제징용에 관련된 기업그룹인가? 실제 많은 일본기업들이 이 느닷없는 정부의 강경조치에 안절부절 하는 이유이다.

 

일본정부는 개별기업 그것도 강제징용관련 피해와는 무관한 기업의 수출을 규제할 권한을 과연 갖는 것인가. 나아가 3개 부품소재의 대 삼성 SK 하이닉스 LG 수출 축소와 동시에 이들 조립제품의 대일수출이 축소될 경우 발생할 손실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셋째, 미국의 하웨이 규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동참하기 위해 한국의 중간재 생산기지를 초토화하여 IT 경쟁국 한국기업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대중기술 유출을 차단하겠다는 13조의 계산이다. 그러나 이들 3대 핵심부품소재 대한 수출-한국의 중간재 조립생산-대중 중간재와 기술수출에 이르는 구체적 플로의 전모를 정부가 파악하기는 역부족이다. 넷째, 일본의 핵심부품소재는 선린우호국의 공유자산이지 군사용이나 진배없는 전략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분명 이번 조치는 일본이 다자 양자 협상과 최근 G20 공동성명에서 제창해 온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위한 규범 추동자로서의 기존방침에는 역행하는 행위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에 대한 경고를 오사카 G20 공동성명 문구에 끝내 반영하지 않은 속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제 일본마저 WTO다자주의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WTO 제소는 승소여부에도 불구하고 행정당국의 면피용 국내용일 뿐이다.

 

3. 인재(人災) 스나미 막으려면 나라의 틀 다시 짜야

2011. 3. 11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의 동북지방 전자부품기지를 휩쓸고 관동지방 조립업체는 물론 민생경제와 동아시아 서플라이 체인 단절의 위기를 몰고 왔던 스나미가 천재(天災)였다면 이번 사태는 한일양국의 협량하기 그지없는 리더십이 만들어낸 인재(人災) 스나미이다.

 

위안부 문제로 3년 동안 정상간 만남조차 기대하기 어렵던 시기 아베정부는 이미 외교청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우호국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 시점부터 아베정권은 한국과의 선린우호관계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우리가 자초한 일임에도 당시 우리 외교당국은 무관심했다. 뒤이은 정부도 과거에 매몰되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지 못했다. 이대로는 한일관계는 예측불가의 시계제로이다. 끝 모르는 추락이 기다릴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기업의 예상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첫째, 일본의 핵심부품소재 생산 수출관련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상이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수출규제 동참과 여타 품목과 민간교류 등으로 규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하웨이 등 대중 중간재와 동 기술유출 통로를 재점검하여 군사정보기술 전환 의혹을 사전에 불식시키며 대중 지재권 강화 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 둘째, 대일의존도가 높은 핵심부품소재의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위해 기초연구개발 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일본의 핵심부품소재는 이른바 고도 숙련에서 잉태되는 암묵지의 결정체로서 쉽사리 모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제조업 스마트전략에 포함시켜 정권의 부침에 관계없이 일본기업과의 제휴 혹은 M&A를 통한 공동기술 개발을 지속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공공외교력을 총동원하여 강제징용 피해 보상 기금조성 여부를 조기에 결정해야 한다. 기한은 법원이 일본제철의 현금화를 위해 기업방문조사를 완료하는 금년 말이다. 현재 수입금지 중인 방사능 피해가 의심되는 일본산 수산물의 단계적 해금조치가 계기가 될 수 있다. WTO제소 승소를 즐기고 있을 때가 지났다. 여의치 않으면 과거 보상 선례에 따라 자발적인 국민성금에 의한 자체보상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천재(天災)는 단기간 복원되고 때에 따라서는 새로운 프레임구축의 계기도 되지만 인재(人災)는 두 나라 틀을 동시에 바꾸지 않으면 복원이 어렵다. 양국은 한미일 경제안보 동맹 강화야말로 인간의 자유, 생명존중, 민족을 넘어선 인류애 등 인류보편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의 전략자산이라는 신념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위기는 공동 관리하며 미래로 나가야 한다. 양국이 함께 하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존이구동(存異求同), 절차탁마(切磋琢磨) 정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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